The Genealogy of Probability
학문이 되기까지 5세기: 확률론의 계보
- Volume
- CCLXI
- Date
- March 19, 2026
- Filed Under
- History & Tactic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확률이라는 개념은 처음부터 학문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우연이라는 현상은 신의 의지나 운명의 영역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를 수학으로 다루려는 시도 자체가 불경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확률론이 독립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약 5세기에 걸친 연구자들의 누적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본 호에서는 그 계보를 추적합니다.
16세기, 카르다노의 첫 시도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수학자였던 지롤라모 카르다노(Girolamo Cardano)는 1564년경 Liber de Ludo Aleae(우연의 게임에 관한 책)를 집필했습니다. 이 저작은 확률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받지만, 카르다노 본인이 도박꾼이기도 했다는 사실 때문에 학계의 관심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두 개의 주사위를 던질 때 나올 수 있는 36가지 경우의 수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열거했고, 각 경우의 발생 빈도를 계산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저작이 카르다노 사후 87년이 지난 1663년에야 출판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동시대인들은 우연을 수학으로 환원하려는 시도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카르다노의 작업은 거의 한 세기 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카르다노에 대한 학술적 평가는 Wikipedia의 Gerolamo Cardano 항목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17세기, 페르마와 파스칼의 서신 교환
확률론이 진정한 학문으로 자리 잡은 출발점은 1654년 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와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이 주고받은 서신입니다. 이 서신의 발단은 슈발리에 드 메레라는 인물이 제기한 질문이었습니다. 두 명이 게임을 진행하다가 중간에 중단되었을 때 판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라는 매우 실용적인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분배 문제(problem of points)로 불리며, 페르마와 파스칼은 각각 다른 접근법으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페르마는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열거하는 조합론적 방법을, 파스칼은 재귀적 추론을 사용했습니다. 두 사람의 서신 교환을 통해 기댓값(expected value)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명확히 정립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의사결정 이론의 가장 기초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8세기, 베르누이의 큰 수의 법칙
다음 단계는 야콥 베르누이(Jakob Bernoulli)의 작업입니다. 그의 사후 1713년 출판된 Ars Conjectandi(추측의 기술)는 확률론을 단순한 게임 분석 도구에서 일반적인 추론 수단으로 확장한 결정적 저작입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큰 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 엄밀하게 증명되었습니다.
큰 수의 법칙이란 어떤 시행을 충분히 많이 반복하면 관측된 빈도가 이론적 확률에 수렴한다는 명제입니다. 이는 직관적으로 당연해 보이지만, 수학적으로 엄밀히 증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베르누이의 증명 이후 비로소 확률론은 통계학과 결합할 수 있는 토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라플라스의 종합
피에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1812년 Théorie analytique des probabilités(확률의 해석적 이론)에서 그때까지 축적된 모든 결과를 통합했습니다. 라플라스의 작업은 확률론을 천체역학, 인구통계, 측정 오차 분석 같은 응용 영역으로 확장시켰으며, 베이즈 정리의 현대적 형태도 그의 손에서 다듬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정규분포가 통계적 도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Carl Friedrich Gauss)가 천문 관측의 오차 분포를 연구하면서 도입한 정규분포는 라플라스의 중심극한정리와 결합하여 19세기 후반의 통계학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학설사는 Britannica의 probability theory 항목이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켈리 기준의 등장
20세기에 들어 확률론은 정보이론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1956년 벨 연구소의 존 라리 켈리(John L. Kelly Jr.)는 정보이론을 자금 관리에 응용한 켈리 기준(Kelly criterion)을 발표했습니다. 이 공식은 양의 기댓값을 가진 반복 게임에서 자금의 어느 비율을 베팅해야 장기 성장률을 최대화할 수 있는지 수학적으로 답합니다.
켈리 기준의 함의는 단순한 도박을 넘어섭니다. 이 공식은 투자 포트폴리오 최적화, 보험 위험 관리, 정보통신의 채널 용량 계산 같은 영역에서 응용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Field Manual에서 정리한 Bankroll 개념의 이론적 기원이 바로 이 켈리 기준입니다.
학문이 된다는 것의 의미
5세기에 걸친 이 계보가 가르쳐주는 것은 우연이라는 현상이 결국 수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충분히 많은 시행의 평균은 수렴합니다. 개별 사건은 무작위로 보이지만, 분포 전체는 패턴을 가집니다. 이 인식의 전환이 카르다노에서 켈리까지 이어진 작업의 핵심 성과입니다.
Team Colonial이 자료를 다루는 방식도 이 계보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의 사례를 일반화하지 않으며,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표본만을 결론의 근거로 삼습니다. 이 원칙은 Editorial Code의 세 번째 항목으로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우연을 수학으로 다루기까지 인류가 5세기를 들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매번 글을 쓸 때 새겨두어야 할 무게입니다.